
정확하게는 기억나지는 않는 어떤 날이 있었다. 평소와도 같은 그런 날, 여지없이 기르던 개와 산책을 하고, 평범하게 카페에서 일을 했던 그런 날, 일터에서 잔잔하게 깔리던 재즈를 들으며, 같은 곳에서 일했던 직원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했던 그런 날, 센티넬과 가이드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던 그런 일이 있던 것 같았다.
“센티넬을 안정시키는 가이드의 존재가 나타난 게 다행인 것 같아”
“그런 거려나요... 안정제라거나, 브레이크 같은 존재니까, 나름... 그 사람들에게도 좋은 거겠죠?”
“센티넬로 사는 건 어지간히 힘드나봐. 그런 건가? 파도가 거센 망망대해에 있는 배”
그 날은 카페의 사장과 센티넬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때였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나름대로 평범하게 대화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 복작이던 그런 시간대였으니까.
“로빈, 군으로 가기보다 차라리 여기를 물려받는 게 어때? 내가 잘 가르쳤는데, 너를 제외하고 이 카페를 관리할 썩 좋은 애들이 없어서 그래.”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음...생각은 해 볼게요.”
여지없이 이야기를 하던 때, 사람들과 인사를 하던 차, 강한 두통이 밀려왔었다. 아마 그 때, 쓰러지기 직전까지 갔었던가.
“로빈, 괜찮은거야? 병원에 가야하는 거 아닐까?”
“괜찮..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네요. 그런데... 몬스테라랑 다른 화분들이 영 이상..”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마 그 때가 센티넬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같은 이야기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밝혀지지 않았을 때, 센티넬으로서 가진 능력이 어떤 것인지조차도 알지 못했을 때,
대략적인 소견으로 내가 가진 것은 물질의 파괴와 부식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일단은 그랬을 것이다. 군에서의 삶은 센티넬으로서 관리받으며 사는 삶이었으니, 별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2013년 즈음엔가 유니온이라는 연합이 나왔을 때도, 아마도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별 반대의 의사 없이 유니온으로 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 때는 그런 성정이었으니.
“당연한걸요, 사람들에게 가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야”
“그래도 거의 감시받으면서 사는 거잖아, 이렇게 휴가 때마다 만나러 오는 것도 힘들거고...”
“그 때 제가 사장님이 키우시던 식물들을 통째로 죽인 거, 아직도 죄책감으로 남아있어서요...”
“식물이야 다시 기르면 돼, 벌써 한참도 더 지난 일이고, 사람이 안 다쳤으니 된 거 아니야?”
“...... 그래서 가는 거예요, 더 안 다치게 하려고요.”
그렇게 결심을 굳히고, 아마도, 그렇게 반대하지 않고 유니온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기억은 언제든지 자신의 멋대로 왜곡되기 마련이라,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적어도 그 때의 나는 사람들을 걱정했으니,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언제라도 자원해서 갔을, 그런 이였으니까.
지금이야 무감해져 잘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지만, 사람들의 인정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라는 느낌이 강했다. 평화를 바랐고, 어린 시절의 이상을 그대로 가지고 자랐던, 그런 인간이었으니.
센티넬로서의 각성도, 앞으로의 삶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랬다. 너무나도 당연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어떤 여파를 불러올지 몰라 두려웠을 것이고, 사람들의 평화를 무너뜨릴 그런 일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작은 가능성이여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평생을 감시받고, 관리받는 그런 삶으로 자신을 밀어넣더라도 괜찮다고 만족하고 있었을, 그런 어리석음을 보였겠지.
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과거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소중해서 지키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그 아이가 그대로 컸던, 아마도 그런 사람.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달랐을 것이다.
유니온, 이곳에서 평화를 바랐던 그런 멍청이.
반란군이 나타나기 전에 사라져서 다행이었다.
너는 분명 반란군마저 설득하고, 서로의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을거야. 하지만 소용없다. 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나방마냥 뛰어드는 그런 이를 군은 달가워하지 않아, 유니온에 들어가면서 센티넬이며 가이드며 신경쓰지 않고 챙겼던 너는 이제 저 너머로 잠들어버렸으니까.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에, 난 유니온이 나와 적합해서 살아가는 것뿐이야. 능력을 수월하게 사용하거나, 관리받거나, 폭주 직전까지 내몰리는 그런 일이 적으니까. 그들은 센티넬의 폭주를 두려워하니까. 이런 삶도 나름 괜찮아서 얌전히 지내는 것뿐. 정의감으로 뭉쳐서 군에 들어갔다기보단. 그냥 들어오라니까 들어온 그런 무료한 이유로, 지금 이렇게 지내는 나를 보면, 그 때의 나는 어떤 표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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