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15번. 악마 정방향. 예속, 황폐. 보조적으로 뽑은 카드, 완드의 페이지. 당신은 열의가 있고, 순수했었습니다. 그 이유, 펜타클 8번, 펜타클을 만드는 청년의 그림. 당신은 자신을 갈고 닦았기에, 열의를 다했기에 예속되었습니다.]
“의외군”
카드를 뽑자 나온 결과에 무심결에 나오게 된 단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혼수상태에 빠지기 직전의 그를 과거로 잡았기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라도 그것은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할 자신이 있던 그였기에, 그는 카드가 내놓은 대답에 그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색조차 판단을 해칠 수 있어 오로지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흔히 볼 법한 디자인이 아닌, 특이한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카드와, 그 밑에 조용히 자리를 잡은-채색이 되어있는, 남들이 흔히 볼 법한 타로카드가 놓여있었다.
[현재, 컵의 여왕 역방향, 부도덕함, 일관되지 않은 명예, 보조카드. 뒤집힌 완드 9, 에너지의 소진, 자신을 의심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 당신의 의사가 명확해졌고,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컵을 맞대고 있고, 그 사이로 카두세우스가 있는 그림을 펼치고는 가볍게 숨을 뱉는다. 의뭉스럽다는 양 펼쳐진 카드들을 바라본다.
‘나를 카드로 표현하자면, 어떤 카드지?’
[XI. 정의]
“객관적이고, 까다롭다... 다소 완벽을 추구하는 기질이 있다.”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과거의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을 때, 나왔던 것은 완드의 여왕이었던가, 자애롭다, 따뜻하다. 지금의 그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현재의 자신, 10개의 펜타클이 에워싼 그림, 풍족하지만 감정의 결핍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의 과잉은 다른 것의 결핍을 보일수도 있다. 그것을 주의하는 카드였다. 마치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표현이라도 하는 것처럼, 금빛으로 칠해진 동전들이 보였다.
“......”
애매한 감정들이 떠오르기도 전에 잠겨버린다. 그는 석 달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지만, 급작스럽게 일어난 스트레스로 인해 그의 머리는 하얗게 새어버린 뒤였다. 그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자마자 상관들은 그의 가족들에게 상황만을 전했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성격이 달라졌어. 예전에는 더 온화한 느낌이었는데.”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리바운드의 여파가 너무 심했던 것 같아. 상부에서 널 주시하고 있는거, 알아?”
“루카스... 아니죠, 루카스 중사님, 이렇게 부르는 게 나을까 싶습니다. 상명하복, 유니온 내에서는 가이드의 위치가 센티넬보다 높으니 말이죠.”
“......”
그 때의 대화가 얼핏 떠오르다 다시금 잠긴다. 확실히, 감정의 변화가 미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마치 그 일 이후로 모든 것이 전소해버린 것 같은 느낌, 불을 지피더라도 너무나도 미미하게 피어오를, 그는 그런 잿빛이 되었다.
“과거의 내가 무슨 짓을 했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다들 과거에 너무 메여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는 가볍게 조소를 날리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 머리카락을 헝클이다가 다시금 입을 연다. 조소가 울린다. 이번에는 저에게 보내는 조소였다. 망할, 망할 과거의 자신. 네 그늘이 내 자신을 비웃게 만들어. 끝까지 남을 위하다 죽을 놈.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가지 않을 과거.
“웃기지 말라고 해, 그 때의 그놈은 육 피트 너머로 꺼지라지.”
가볍게 웃음을 뱉고는 다시금 이성을 찾는다. 그것이 지금의 그가 하는 최선의 선택들 중 하나였으니.
2.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카드점은 나름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일단 이것저것 배우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어느 정도 교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일까. 물론 그의 변해버린 성격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년 전의 그 일로 인해 사경을 헤맸던 이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 거의 모든 것들이 뒤바뀌어버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가 과연 모두가 기억하는 ‘클로비스’인지에 대해 난처해했다. 테세우스의 배가 되어버린 그는 유니온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소문들 사이에 오른 주제가 되어버렸다. ‘붕괴 혹은 부식’이라는, 정확한 이름조차 명명되어지지 않은 능력의 대가가 인격의 소실이라는 그런 것이라거나. 전두엽의 손상으로 인한 성격의 변화라거나,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흥미가 없어 별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그의 전우가 중재를 해 주어 그 정도의 선에서 그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그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다.
“과거에 관해 아무런 미련도 없어?”
“별 다른 생각도, 느낌도 없습니다. 이거, 중사님을 또 곤란하게 하겠네요.”
“깨어난 건 다행이야. 정말로. 하지만... 이런 결과까진 몰랐어.”
“내가 그리웠어? 루카스.”
“......”
“장난은 이 쯤 하겠습니다, 이거 영 힘들더군요.”
그 날 이후로 그는 거짓 연기를 그만두었다. 이 년을 그렇게 있으니, 다들 적응한 건지, 아니면, 체념한 것인지. 그들은 별 말이 없었다.
별 다른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는 모습, 지금이 그의 모습이었다. 여전히 상부에게 능력의 사용에 대한 감시를 받는 입장이지만은, 이것 또한 그는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로 했다.
[난 나약했어. 러셀, 나는 오로지 답을 찾으려고 수많은 책들을 읽었을 뿐이야...(중략) 부디 날 지켜봐 줘. 러셀, 좋은 형이 못 되어줘서 미안해.]
이제는 별 다른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는 편지, 18살의 스스로가 어린 시절 돌봤던 검은 개에게 보낸, 수신인이 없는 편지. 그는 여전히 그것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지금의 그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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