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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내에서 허락한 외출, 그는 사복 차림으로 밖을 나섰다. 곧 있으면 캠프파이어였다. 빈 손으로 오지 않도록, 이런 말을 전달받은 상황에 그는 흰 군복을 벗고 검은 빛의 옷으로 착장을 바꾼 날이었다. 크리스마스까지 3주 남짓 남은 상황에서, 리지스탄시아가 벌인 소동은 신문이나 뉴스에서 간간히 언급되고만 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불안을 노린 것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붕 뜨는 분위기에서 그는 혼자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이 즈음의 시기에 마음이 들떴던 것 같은데, 지금은 무겁게 내려앉는 공기만 뱉을 뿐이었다.

 

“......”

 

그가 늘 가던 카페에서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빴다. 10월에는 할로윈, 11월부터 천천히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다가 12월에는 화려한 장식이 눈부실 만큼 가게를 장식하고 있었다. 포인세티아 화분이 주변에 있었고, 몬스테라가 카운터를 장식하는 곳에서, 그는 제 곁에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카페의 직원을 쓰다듬듯이 머리를 도닥여주었다. 이만 가 봐, 코덱스. 라고 말하곤. 그는 늘 마시던 것을 주문했다.

 

NOEL

 

12월은 나름 바빴다. 월 초부터 정신없는 일들이 일어났기에, 적어도 유니온에서 몸을 담았던 긴 기간동안, 그는 이례적으로 즐겁다고 생각할 만큼의 태도를 보였다. 크리스마스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들에 대하여, 리지스탄시아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것보다는 오랜만에 몸을 움직일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다시 눈을 뜬 이후부터 유니온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가 되었지만은, 가끔씩은 휴식이 필요한 법이었다. 이 시간 즈음이 되면 서점에라도 들러 책을 샀겠지만은, 저를 싫어하다시피 하는 직원을 골리는 것도 오늘은 미뤄두고 싶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겠지만... 조심해야겠지. 숨어있는 리지스탄시아도 찾아내라는 명분일지도 모르겠어.”

 

그는 제 앞에 놓인 수를 고민했다. 리지스탄시아의 선언,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유니온의 붕괴. 패는 많았다. 이제 제게 필요없는 것들을 걸러 낼 차례였다. 말도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들, 그것들을 골라내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클로비스씨. 음료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직원의 부름에 주문한 음료를 가져가는 그였다. 나름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직원의 두 번째 부름에서야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코덱스는 제 곁으로 와 꼬리를 흔들며 무언가를 바랐다. 그렇게 말해도 내겐 간식이 없어. 라고 그가 말한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코덱스는 그의 근처로 가 드러눕듯이 앉았다. 검은색과 갈색이 군데군데 섞인 개는 멀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간식을 원하는 건지, 관심을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눈치였다가. 이내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개를 보고서야, 그는 제 몫의 잔을 들었다.

 

 

2.

센트럴 파크를 장식하는 트리는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야간이 되면 조명의 빛을 받아 받짝일 크리스털을 보자니, 저 트리에 쏟았을 막대한 규모의 자본을 실감했다. 매 년을 이렇게 축하하는 것을 보아도 감회는 없었다. 2년 전에 비해 감상에 젖지 않았다. 작년엔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을 보아도 아무런 감상에 젖지 않은 것을, 동료들은 아쉬워했지만은, 지금은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질린 것이겠지. 그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다른 사람이라 여기는 것일 것이다. 그것조차 아무런 감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비되었다기보단, 마치 도려내버린 것처럼. 그런 느낌이었을까.

 

“......”

 

후, 하고 숨을 뱉어본다. 숨이 얼어붙어 희뿌연 증기가 보였다. 곧 크리스마스였고, 캐럴과 성가가 울려퍼질 것이다.

Hark how the bells,

Sweet silver bells,

All seem to say,

Throw cares away

가벼운 어투로 읊듯이 음을 불러본다. 예전에는 자주 흥얼거렸을 음이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말하는 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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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 달, 폭주의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은 자가 깨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상부는 그를 살려두고자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오랜 기간이 걸린다면 그의 목숨을 꺼뜨릴 준비도 되어있었다.
 
그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의 사이에서 눈을 떴다.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는 것이 보여졌다. 그간 관리를 하지 않아 길어진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
 
석 달, 살아남은 자가 완전히 변모해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강력한 능력의 여파인지, 그는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가지게 되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부식시켜버린 대가인지, 그는 군데군데가 빠진, 그러나 핵심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은 남아있는 기계처럼 행동했다.
 
클로비스, 로빈, 로우. 많은 이름으로 불렸지만은, 이제은 하나의 이름밖에 남지 않았고, 새 이름이 붙었다. Faceless, 표정없는 이. 그는 이 이름에도 별 다른 불만을 품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살아남은 대가로 악마와 거래라도 하고 온 모양이지?'
그는 그런 소문들 사이에서도 유니온의 센티넬로서 소명을 다했다. 상부는 훌륭한 패를 얻었고, 동료들은 친절했던 동료를 잃었다. 감정마저 퇴색되어버린 듯, 그는 아무런 감정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긴 머리가 거슬려 짧게 잘라버린 그였다. 활동에도 불편했고, 그들이 이전의 모습을 겹쳐보는 것이 기꺼웠기 때문이었다. 백색의 제복과 백색으로 변한 그, 나름 괜찮은 조합이었다.
 
센티넬로서 살아오면서 받아 온 많은 가이딩의 과정 속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불안정함. 가이드들은 그의 능력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를 깨달았다. 뇌관을 끊는 길이 너무나도 복잡한 폭탄을 보는 기분이야. 복잡하면서도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 부러 거짓 정보를 보이는 이, 원하는 것을 절대로 손에 주지 않는, 그런 사람. 이전의 그가 여가를 보내기 위해 책을 읽었다면은, 지금의 그는 무료함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었다. 산화되고 퇴색되어버린 기억들의 제 자신을 저 구석으로 밀어내버리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백색으로 표백되어버려 아무런 것도 볼 수도, 읽을 수 조차도 없게 되어버린 그런 물건처럼, 그는 유니온에 몸을 담았던 기간의 그 이상으로 유니온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가 되었다.
 
2.
그가 타로점에 흥미를 보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상대가 필요한, 서로간의 소통이 필요한 일을 텐데, 그는 그런 소문들에도 아량곳 않고 알아가는 것에 집중했다. 아주 가끔가다가 점을 쳐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가 내보이는 결과는 사람의 그늘을 들춰내는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량곳 않았다. 검은 선으로 그려진 그림,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런 그림이 아닌 것. 꼭 저를 닮은 것들로만 이루어졌다.
 
 
 
3.
그는 예전의 그가 남겨놓은 것들을 정리했다.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며 남겨놓은 물건들, 누군가 미련은 없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런 미련조차 느끼지 못했다. 마취되어 감각이 없어진, 그럴리가요. 그가 짧게 대답했다. 아무런 감정조차 없는, 무기질의 목소리. 온화함과 다정이 묻어났던 그 목소리가 날카롭게 버려낸 칼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그는 여전히 상대가 무슨 표정을 지어보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4.
그는 2년의 시간동안, 이전의 자신에 대한 것에 대한 모든 감정을 버렸다. 이제는 없는 사람이다.라고, 그는 짧게 정의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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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대로 하죠, 소위님."

그는 소집에서 짧게 경례를 하고는 문을 나섰다. 일단은 소재의 파악이 우선이었다는 것이 그의 정황이었다. 대규모의 경고, 저들이 혼란을 야기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동시에, 그는 가벼운 비소를 날렸다.

 

"제 스스로가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라..."

오랜만에 진심어린 미소가 인다. 저들은 우리가, 유니온을 바벨탑이라 여긴다. 그는 가볍게 웃음을 뱉고는 소재의 파악을 위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저런 규모의 경고를 날릴 정도라면, 이미 뒤를 밟지 못하게 장난질을 해 놓았을 것이다. 마침내 다다른 끝에는 거짓들로 점철된, 그런 것들이 장식하고 있겠지.

 

"웃기지도 않는 장난을 치는 자들이야, 저들은 그 만큼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은 거겠지. 마치, 마치 모든 것을 관망하듯, 우리들이 스스로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을지도."

 

저 일의 주동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다만 수를 놓아분다. 저런 경고를 날릴 정도라면, 이미 모든 패를 다 모아놓았을 것이라는 것이 추측 하나.

 

"혼란을 위한 선포,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 것이라는 것 조차도 전부 예상했겠지. 센티넬들의 인권을 위해 움직인다는 겉포장. 멀쩡하게 '센티넬'과 '가이드'를 위한다고 하고 있지만... 허울이야."

 

자신이 최대한 모을 수 있는 정보를 추합한다. 닥치는 대로 모으는 것이 아니다. 분명 패는 이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을 것. 차근차근 기틀을 마련했을 것이다. 리지스탄시아.

 

"허울 좋은 레지스탕스들. 분명 모여있거나 서로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하겠지."

 

패를 쥐는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그들이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노리는 것은 유니온, 유니온 내부에도 이미 누군가가 숨어들어가 있을 것이다. 첩자를 제외한다. 그는 숨어있다.

 

"입국 기록도 확인해야겠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의 입국 심사. 그것을 통과한 이들. 그는 분명, 세계 곳곳. 이라고 했다. 그들 중 누군가들을 불렀을 가능성. 핵심부를 공격할 정예들이 이 곳을 노릴 것이다.

 

"불가능을 제하고 남은 것,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그건 진실이지."

 

이런 상황에서 셜록 홈즈를 인용할 줄은 몰랐다. 라고 그는 말했다. 일단은 불가능한 것들을 모두 제외한다. 추측 둘.저 일의 주동자가 센티넬이거나, 가이드가 아니라면은, 저 규모의 인원들을 끌어모을 정도의 리더십이 있어야 하며, 그 만큼의 권력을 휘두를 재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분명. 아무리 믿을 수 없지만은, 가능성은 있다.

 

"그 만큼의 리더십을 보일 수 있으며, 리지스탄시아의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지원까지 할 정도면야... 정말 믿을 수 없겠지만, 이것 또한 믿어야겠지."

 

'기업가의 자제들. 하지만 그들은 권력에 취해 권력을 이런 식으로 이용할 일은 드물 것이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인권,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 최근의 기사 또한 살펴봐야겠어'

 

할 일이 많아졌다. 비상 소집. 소위의 명령보다는 리지스탄시아의 철저한 붕괴를 바라는 그였다.

 

"너희들이 바라는 그 세상(resistantia)은 없어. 레지스탕스들."

 

가볍게 비소를 뱉는다. 그리고 다시금 입을 연다.

 

"주동자를 찾아내 산화시켜주지. 애써 만든 질서를 부수는 것들. 오만에 맞는 결말을 맞이하길 바라지."

 

 


1202/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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